신의 목소리

진해로 내려가는 심야버스안. 모두가 잠들어 있고 버스 안은 어두웠다. 고속도로의 가로등은 빛을 비춰주기 보다는 어둠을 노랗게 물들이는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 속에서 소리없는 텔레비전만이 유일하게 하얀 빛을 내며 잠들지 않은 자들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보컬전쟁: 신의 목소리’ 라는 타이틀을 보자마자 식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가수다’로 부터 시작된 프로페셔널 가수들의 경쟁 참여와 슈퍼스타K로 부터 시작된 일반인들의 서바이버 게임의 참여는 이제 너무나 만연한 나머지 싫증을 넘어 어떤 무감각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오… 소오름” 이제 우리들은 노래를 들으면서 이 말을 외친다. 무한보컬경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가수들에게 청중의 즉각적인 반응은 매우 중요해졌다. 청중을 압도하는 성량, 좌중을 홀리는 기교, 귀를 놀라게 하는 음역대, 심장을 떨리게 하는 바이브레이션. 우리는 그 순간의 느낌으로 가수를 판단하고, 가수는 그 순간의 짜릿함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들을 제어없이 쏟아낸다.

“음악은 들으면서 귀에 익는거야.” 라고 말하던 시대가 있었다. 처음에 뭣도 모르고 샀던 테이프가 늘어질때쯤엔 어느새 그 노래가 귀에 익어 내 귀가 그것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그것이 노래의 매력이라고 배운 마지막 세대가 나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MP3가 나오면서 사람들이 자신이 듣고 싶은 음악만 골라듣게 된다고 ‘음악 편식’을 걱정하더니 이제는 순간적인 쾌감을 느끼기 위해 소비되는 1회성 오락거리로 되어버린듯 하다.

12,000원이나 주고 씨디를 아깝지 않도록 돌려가며 가사집을 펼치며 가사를 음미하고 가수를 알아가는 음악은 어디가고 우리는 어느새 음악대장의 노래가 정말 소름이 돋는다느니, 어느 참가자가 임재범 못지않은 목소리로 좌중을 압도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어느 한 가수가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것을 즐기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이 친숙한 곡들을 쾌감으로 이어줄 수 있는 창법과 기교와 목소리를 원한다. 이렇게 짜릿했던 곡이 반복되면서 더 이상 짜릿하지 않을때, 사람들은 또 다른 짜릿함을 찾아간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떨림. 보고싶음. 두근거림. 제어 할 수 없는 감정. 미칠듯한 기쁨. 이 모든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요즘에 페북에 돌아다니는 모든 연애에 대한 만화와 글이 대변하듯 연애는 이 감정에 집중되어 있다. 미칠듯이 보고 싶다고 서로가 서로의 감정을 제어 없이 폭발적으로 쏟아내고 그 과정에서 극적인 쾌감을 느끼는, 마치 오르가즘 같은 감정을 묘사하며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이고 이것이 연애라고 이야기를 한다.

대학교때 잠깐 들었던 보디 바우컴 목사님의 설교에서 주장하는 대로 요즘 사랑이라고 부르는 그 격한 감정은 그리스-로마의 문화에서 나온 개념이며 이것은 성경적인 사랑과는 (사랑은 오래참고 온유하고…) 매우 다르다는 말이 자꾸 생각난다.

기독교의 가치관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다른사람에게 강요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사랑의 종류에는 수많은 것이 있을 수 있으며, 남녀 관계의 사랑도 다양한 양상과 형태를 가질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할아버지/할머니 세대, 조선시대 혹은 그 이전 시대 사람들도 지금과 똑같은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릴까?

그저 요즘 세상이 너무나 즉각적인 쾌감을 강조하고, 순간적인 감정에 중점을 두다 보니 그리스-로마 문화에서 주장하던 사랑이 우리사이에 퍼지게 된 것은 아닌지. 우리가 예전에 음악을 듣던 방식을 버리고 이젠 음악속에서 조차 즉각적인 쾌락을 느끼고 싶어하는것 처럼.

*Cover Photo from Ridge Allen Soriano’s Fli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