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버스

"최선어학원" 이라는 이름이 박힌 노란버스들이 길게 줄을서서 대기를 하고 있다. "한 대, 두 대... 아홉대?" 버스를 세고 나서 내가 놀란다.

토요일 오후 3시, 잠자리 채를 들고 논밭을 뛰어다니며 놀던 아이들이 반세기 만에 경찰 취조실같은 교실에 갇혀있다. 내가 60-70세가 되었을때 우리 대한민국을 책임질 아이들이 저기서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

영어교육을 강요당하고 있는 아이들은 저 영어수업마저 경쟁의 일부라는 것을 알까. 요즘은 아이들이 너무 어릴때 부터 무한한 경쟁에 뛰어든다. 수많은 영유아 교육기관에서 부터 아이들은 남이 벌려놓은 경쟁의 틀에서 일찌감치 경쟁을 강요당하고 자연스럽게 체득한다.

경쟁에는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고, 승자는 패자를 밟고 올라선다. 요즘 아이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남을 짓밟는법을 배우고 자신이 올라서는 방법을 배우나 보다. 그러기에 경쟁과 차별은 떼기가 힘들다고 나는 생각한다.

“휴먼시아 거지”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던 이 한 단어는 요즘 아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지를 거울처럼 적나라 하게 보여준다. 극심한 경쟁속에서 아이들은 상대방의 약점을 발견해 내고 그들을 짓밟고 위로 올라서며 자연스레 차별을 하기 시작하는게 아닌가 싶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버스안의 티비에서 한 EBS 방송의 발췌분이 방영되고 있었다. 초등학생 2학년생들에게 학우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 모습이 나왔다. “네가 마음이 많이 상했구나. 미안해” 학교 선생님이 한 아이에게 이 말을 하도록 가르친다. 자막에는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웁니다.” 라고 써있다.

우리나라 교육의 못난 모습에 한탄이 절로 나왔다. 3-4세 때부터 아이들을 무한한 경쟁속에 집어넣고 “휴거” 같은 단어를 내뱉는 괴물로 만들어 놓고 겨우 한두시간 아이들에게 “공존하는 방법”을 주입한 채 “우리 어른들은 할 교육은 다 했어.” 하며 손 탁탁 털고 아이들이 훌륭한 인격체로 자라기를 바라는걸까.

이들이 40-50세가 되어 만드는 대한민국을 보기가 차마 두려운건 나 뿐인지.

휴먼시아는 토지주택공사에서 만드는 아파트 브랜드 이름입니다. 정부에서 짓는 아파트인 만큼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합니다. 임대아파트도 요즘엔 휴먼시아 브랜드로 지어지죠. 휴먼시아에 사는 아이들을 거지로 취급하면서 휴거라는 단어를 쓴다죠. 휴먼시아 거지에 대한 허핑턴 포스트의 기사를 링크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