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

고민을 시작한다. 인터뷰를 준비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그 질문에 어떻게 답변을 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을 한다. “머리는 어떻게 잘라 드릴까요?” 라는 미용사의 첫 질문은 아직도 나에게 인생의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미용실 물 먹은지 어연 20년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단다. 나도 미용실을 20년 넘게 다녔으니 “머리는 어떻게 잘라 드릴까요?” 라는 질문에는 멋있게 대답 할 충분한 연식은 되었을터. 그래서 몇 가지 생각해놓은 레파토리가 있다.

  1. “요즘 유행하는 머리는 뭔가요?” 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유도해 보는 방법. ‘난 미용실에 왔다고 긴장하지 않아!’ 라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줄수 있는 질문이다.
  2. “요즘에 무슨무슨 머리가 유행한다는데 저도 그렇게 한 번 잘라볼까요?” 하고 질문하는 방법. 내가 또 헤어스타일 지식이 완전 없지는 않다는 인상을 주면서도, 상대방의 의견을 구함으로서 친근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노련미를 표출할 수 있는 질문이다.
  3. “제가 볼 수 있는 사진 같은거 없나요?” 미용실의 준비된 모습을 요구함으로서 돈을 내는 사람은 누구며, 누가 우위에 있는지 확실히 점 찍을 수 있는 권위적인 질문이다.

아메바 알파고

“머리는 어떻게 잘라 드릴까요?” 라는 질문이 딱 나오는 순간 모든것이 귀찮게 느껴진다.

수많은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1번 시나리오를 연습을 했지만 끝내 반사적으로 “그냥 짧게 잘라주세요” 라고 답변을 해버린다.

마치 하나의 대답만을 하도록 프로그램 된 아메바 수준의 알파고 처럼.

옆 손님

옆에 손님이 머리를 자르고 있다. 의자에 앉자마자 막힘없이 “제가 왁스를 바르니까… 윗머리는 짧게… 옆머리는… 뒷머리는… 마무리는…” 하면서 요구를 한다. 미용사도 “아아, 그럼 이렇게 잘라드리고, 저렇게 컷트하고… 하면 될까요?” 하면서 서로 의견을 조율해 나간다.

‘나도… 저렇게 해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긴다. 하지만 이미 바리깡은 내 귀 옆에서 윙윙거리고 있다. 아몰랑…

정해진 대답

“손님. 머리 다 잘랐습니다. 어떠세요?” 질문이 들려온다.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 저 한 마디가 귓속을 치고 들어오니 순간 당황을 한다. 그래도 내 20년 경험은 무시를 할 수 가 없다.

거울속을 쳐다보니 내 앞머리가 일자로 잘라져있다. 어딘가 너무 동그랗게 이발이 되어있었다. 어찌보면 바가지 머리 같기도 하고, 버섯머리 같기도 했다. 하지만 “어우, 너무 좋아요. 좋습니다.” 이 한마디가 반사적으로 툭 튀어져 나온다.

쪼르르

빨리 미용실을 뛰쳐나가고 싶어 몸이 꼬이고 다리가 떨린다. 드라이는 왜 이렇게 오래 하는지, 왜 쓸데 없이 “왁스 바르시겠어요?” 라고 물어보는건지 모르겠다. 왠지 호객의 모습을 보인것만 같아서 부끄러운 마음에 이미 몸과 마음은 미용실 출구를 향하고 있다.

“10000원 입니다.” 하는 점원의 안내에 카드를 줬다가 신속하게 빼앗고는 자동문을 도망나오듯이 빠져나와 코너를 돈다.

마음의 평화

그제서야 마음에 평안이 찾아온다. ‘미용사가 알아서 이쁘게 잘라 줬겠지’ ‘이게 나에게 제일 잘 맞는 2016년 헤어스타일 이겠지’ 하고 위로하며, 내 귓가에 이제 시원하게 바람이 느껴진다는 것과, 내 목덜미 위쪽이 조금 시원해졌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하지만, “머리는 어떻게 잘라 드릴까요?” 는 평생 풀리지 않을 인생의 난제로 남아 있을것 같다.

*여자친구가 알려줬는데 내가 자른 머리가 요즘 유행하는 “처피 뱅(Choppy Bang)” 스타일이라고 한다. 2016년에 이 머리스타일이 유행이라고... 남자 Choppy Bang의 바람직한 예시들은 여기서 확인 할 수 있다.

*Cover Photo from Dean Hochman's Flickr Accou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