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카페

“저기… 핸드 드립이 4,500원 인거에요?” 조심스럽게 물어보고는 카페 내부를 한번 둘러보았다. 16명 정도의 자리가 있는 조그마한 카페 안에는 사장님과 지인분 두 분만이 계셨다.

처음엔 스타벅스를 찾아갔다. 이미 많은 사람이 애플 노트북을 펼쳐들고, 전공서적을 펴놓고, 다이어리를 열심히 정리하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바로 커피숍을 나왔다. 근처에 있는 맘모스 커피점을 향했다. 거기도 사람은 많았다.

원두를 선택해 주세요

“어떤 원두를 드릴까요? 코스타리카, 탄자니아가 있는데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조금은 당황했다. 맥도날드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이 서브웨이에 처음 가서 마주치는 문화적 충격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탄자니아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다. 커피를 직접 가져다 주시겠다고 했다.

스타벅스에 가면 이것저것 섞은 원두를 4,500원에 살 수 있다. 이 작은 카페에서는 4,500원에 내가 원하는 원두를 고를 뿐만 아니라 기기로 뽑아낸 에스프레소가 아닌 핸드드립을 마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벅스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다.

편안함을 선호해

사회가 복잡해지고 믿기 어려워져서 그럴까,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예측가능한 것들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모르는 커피숍에 가서 이것저것 신경쓰는것 보다는 우리 모두가 다 알고있는 스타벅스의 그 통일된 사용자 경험성의 편리함에 스타벅스를 먼저 찾게 된다.

동네 커피숍으로 몰릴 수 있는 발길이 전국 곳곳에 있는 스타벅스로 몰린다. 예전에 작은 가게의 사장이었던 분은 이제는 프렌차이즈의 대리점주로 회사에 귀속되고, 수많은 영세 상인들이 나눠가졌던 부가 이제는 특정한 대기업들에 집중이 된다. 그리고 그 대기업의 경영자들에게 막대한 부가 집중된다.

탄자니아는 맛있어

탄자니아 핸드드립은 일단 많이 쓰지 않았다. 마시다 보니 어떤 단 맛도 나는것 같고. 4,500원 짜리 핸드드립이 4,500원짜리 쓴 아메리카노 보다 훨씬 많이 팔리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EBS 다큐멘터리 민주주의를 보면 자본주의의 아버지인 아담스미스가 생각했던 자본주의는 대리점주 보다는 사장님이 더 많던 사회를 기준으로 구상이 되었던 것이라고 한다.

4,500원 짜리 핸드드립을 더 많이 마시면 좋겠다는 것은 단순한 반기업정서가 아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회. 누군가의 간섭이나 압박 없이 개개인이 자신의 권한을 행사 할 수 있는 사장님이 많아 질 때, 민주주의의 기반도 더욱 더 공고해 지는 순기능이 있을것이라 본다.

경쟁력은 갖추어야

커피맛과 가격 경쟁력은 이렇게 훌륭함에도 정신사나운 인테리어는 커피를 별로 주문하고 싶지 않게 만든다. 벽 한쪽에는 한자 천자문을 비롯한 각종 책이 정신없이 꽂혀있고, 다른 한쪽 벽에는 스노우보드가 벽에 걸려있고, 용도를 알수 없는 찻잔과 주전자가 여기저기 장식품으로 놓여있다.

누군가, 4,500원 짜리 핸드드립을 돋보이게 도와주고 조언해 줄 수 있다면, 4,500원 짜리 아메리카노와 경쟁을 충분히 할 수 있을텐데 항상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회사를 과대하게 키우고 부를 집중시키는데만 관심이 있다.

경제변호사

법치국가에서 약자를 위해 활동하는 선의의 변호사들이 있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약자를 도울 수 있는 ‘경제변호사’가 있어야 할텐데. 핸드드립을 파는 이들은 적절한 경쟁력을 갖출 도움을 가지지 못하고 항상 시장에서 당하기만 한다.

누군가 나서주면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