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정살

"좋아. 오늘은 항정살을 먹어야 겠어" 하고 결단하는 날은 대단히 특별한 날이다. 정육점에 들려서 체면을 차리고 구매를 하면 최소 14000원이 넘는 돈을 지불해야 하는 꽤나 비싼 음식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퇴근하고 출출한 저녁, 홈플러스에 들려 풀무원 함박스테이크가 또 1+1을 하는지 체크한다. 스팸이나 소시지도 빠지지 않고 확인한다. 식단에 육류가 없으면 식사를 거부하는 나의 중독증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저렴한 수단을 찾는다.

"항정살 주세요." 선분홍색의 길다란 고기들이 검은 플라스틱 봉투 안에 담긴다. 보기만해도 아삭하고 쫄깃한 식감이 느껴지는듯해 항상 살때도 먹을때 만큼 짜릿하다.

가끔은 이 항정살은 정말 특별한 음식인걸까하고 생각해본다. 2016년 대한민국은 일인당 GDP가 3만불이 넘는다고 떠들어 대지만 나의 현실은 80년대 배경 소설에서 나오는 소박한 시민이다. 어머니가 시장에서 고기를 사오신 날은 특별하다고 하는 그 날 처럼 내가 정육점을 다녀온 날은 매우 특별한 날이다.

집세가 내 월급의 25%를 차지하고 한 달 버스비가 15만원이 넘어가고 각종 휴대폰 요금 및 보험료가 나가고 나면 나는 언제 돈을 벌었는지 싶을정도로 남아있는 돈이 얼마 없다. 이런 사회초년생에게는 매일 커피 한 잔 마시는것도 크나큰 부담이다. 모두가 은퇴후 창업 아이템으로 삼는 치킨이 나에게는 꽤나 큰 결단을 요하는 16000원 이상의 가격이라는것도 슬프다.

어른들은 통장을 보며 돈을 모으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3-4년만 돈을 모으면 집을 살 수 있는 세대가 존재했다고 하는데 믿기가 어렵다. 우리는 “재미있게” 30-40년을 모아야 저기 진해에 있는 집을 마련할 수 있다고 하는데 말이다.

그럴바에아 그냥 항정살이라도 몇 번 더 사먹으련다. 그렇게 시원하게 스트레스라도 풀어야 다음달 벌이를 열심히 할 수 있으니까.

Cover Image from Emily's Flickr